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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허파, 남산공원 – 도심 속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곳

by 모두인 2025. 10. 11.

서울의 중심에서 한 걸음만 벗어나면, 세상은 전혀 다른 리듬으로 흘러간다.
오늘 나는 그 리듬을 만나러 남산공원으로 향했다. 유난히 바람이 선선하던 오후, 빽빽한 도심의 소음이 뒤로 멀어지고, 나무 사이로 햇살이 부서지며 내 어깨를 스쳤다. 남산은 늘 서울의 심장 같았다. 수많은 길이 얽혀 들고, 수백만의 사람이 오가지만, 그 안에서도 남산은 묵묵히 우리를 숨 쉬게 한다.

남산공원은 서울의 허파라고 불린다. 총 면적이 약 290만㎡에 달하며, 그중 80% 이상이 숲과 녹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1968년에 문을 열어 반세기 넘게 서울 시민들의 쉼터가 되어왔다. 장충, 예장, 회현, 한남 등 여러 지구로 나뉘어 있으며, 어느 길로 들어서도 숲 냄새와 흙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도심 속에서 이런 자연을 만난다는 건, 도시가 주는 보상 중 가장 아름다운 형태일지도 모른다.

길은 다양하다. 북측 순환로를 따라 오르면 완만한 경사의 도로가 이어지고, 남측 숲길로 접어들면 조금 더 야생적인 숲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이 두 길을 이어 걷다 보면 약 6.7km 정도의 산책로가 완성된다. 나무 사이사이에서 새소리가 들리고, 발밑에는 작은 들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도심의 먼지를 털어내고, 오직 ‘걷는 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다.

길 끝에서 만나는 남산타워는 언제 봐도 낯익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얼마 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줄여서 **‘케데헌’**이 전 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화제가 되었다. 그 작품 속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이곳, 남산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악과 싸우던 장면 뒤로 서울의 야경이 펼쳐지고, 그 중심에는 남산타워가 있었다.
그 장면 하나로 남산은 다시 세계 팬들의 성지로 떠올랐다. 실제로 남산타워와 공원 일대에는 영화 장면과 같은 구도를 따라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나 역시 오늘 그 장면을 떠올리며, 영화 속 배경이 된 계단길을 따라 올라봤다. 새로 조성된 데크길 덕분에 이전보다 더 편하게, 그리고 빠르게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예전엔 1시간 넘게 걸리던 길이 이제는 20분이면 충분하다니, 기술보다 자연을 지키는 배려가 더 느껴졌다.

남산의 또 다른 이름은 ‘목멱산(木覓山)’이다. 조선 시대, 이곳은 한양의 남쪽을 지키는 상징적인 산이었다. 봉수대가 있던 자리엔 여전히 터가 남아 있고, 곳곳에는 옛 국사당과 제례의 흔적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이 모든 역사와 현대의 감각이 한 공간에 겹쳐져 있다는 게 남산의 매력이다. 수백 년의 시간이 겹쳐지며 만들어낸 서울의 이야기, 그 중심에 남산이 있다.

팔각정에 다다르자 바람이 조금 더 세졌다. 서울의 빌딩 숲이 발아래로 펼쳐졌다. 누군가 벤치에 앉아 기타를 치고, 연인들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언제나처럼 N서울타워의 불빛이 하늘을 수놓았다.
낮의 남산이 따뜻한 품이라면, 밤의 남산은 조용한 위로 같다. 도시의 불빛이 바다처럼 밀려와도, 이곳에서는 마음이 고요해진다.

그날 나는 남산의 바람 속에서 오래 머물렀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맑아졌다.
남산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다. 서울 사람들의 기억이 쌓여 있는 장소, 그리고 나 같은 도시인의 마음이 쉬어가는 곳이다. ‘케테헌’ 속 화려한 남산도 좋지만, 나는 오늘, 현실 속의 남산이 훨씬 더 근사하다고 느꼈다. 영화 속 장면보다 더 생생한 초록, 더 진한 공기, 더 따뜻한 사람들의 웃음이 있었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내려오며,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도심 속에서도 이렇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걸 잊지 말자고.
그리고 언젠가 또 힘든 날이 오면, 오늘처럼 남산으로 걸어 올라, 그 바람 속에서 내 마음을 다시 찾으리라.


📍남산공원 한줄 정보

  • 주소: 서울 중구 삼일대로 231
  • 입장료: 무료
  • 주요코스: 남산도서관 → 팔각정 → N서울타워
  • 교통: 순환버스 02, 03, 05 / 케이블카 이용 가능
  • 포토스팟: 팔각정 노을, 북측 숲길의 벤치, 남산타워 야경

남산공원